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2세 (문단 편집) === [[오스트리아 제국]] 수립 === [[파일:external/www.viennatouristguide.at/franzII_krone.jpg]] 그 와중에 한창 천하무적의 위세를 자랑하던 나폴레옹이 1804년에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자 프란츠의 합스부르크 가문 측에서는 대표 작위인 오스트리아가 기존 신성 로마 제국 내의 대공국으로 격하되어 유사시 듣보잡으로 여기던 독일 소국보다 낮아지고, 나폴레옹 또는 그의 하수인의 신하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기존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대체하여 합스부르크를 대표할 만한 직위인 '오스트리아 황제'를 칭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동군연합으로 통치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대공국]],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 [[트란실바니아 대공국|에르데이 대공국]],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부코비나 공국]] 등을 합쳐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웠다. 당연하지만 프란츠가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를 보고 단순하게 자존심이 상해서 --꼴받아서--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운 건 전혀 아니다. 이미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대 군주들은 18세기부터 통치가 힘든[* [[30년 전쟁]]으로 인해 신성 로마 제국의 영방 국가화가 가속화되었고 특히나 세력이 컸던 4명의 세속제후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브란덴부르크]], [[작센 선제후국|작센]], [[팔츠 선제후국|팔츠]], [[바이에른 선제후국|바이에른]] 등은 독자적인 세력을 구성했다. 특히 브란덴부르크는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동군연합]]을 형성하였고, 이것이 발전하여 결국 [[프로이센 왕국]]이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보다는 보헤미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 관리가 더 쉬운 동방 영토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를 한데 합친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 오스트리아 대공으로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보헤미아 국왕,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 밀라노 공작 등 여러 나라들의 군주를 겸하는 [[동군연합]]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합스부르크 제국|합스부르크 군주국]]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보편적인 용어는 아니며 오스트리아 제국 성립 이전에는 오스트리아가 공식적으로 오스트리아 대공국(현 [[오스트리아]] 공화국 영토에 [[잘츠부르크주]]를 빼고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의 [[쥐트티롤]], [[고리치아]], [[트리에스테]]를 넣으면 얼추 맞는다)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란츠 2세가 이들 동방 영토를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오스트리아 제국이라는 틀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지는 신성 로마 제국 안과 밖에 모두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제국이 세워진 뒤에는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보헤미아 왕국처럼 신성 로마 제국에도 속하고 오스트리아 제국에도 모두 속하는 지역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어차피 두 제국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양쪽에 속해도 문제는 없었다. 참고로 신성 로마 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제국'은 [[독일어]]로 다르게 표기했다. 전자는 Reich(라이히)라고 하는 데 반해 후자는 Kaiserthum(카이저툼, 현재의 철자법으로는 Kaisertum)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Oesterreich, 현대 철자 Österreich. 외스터라이히)라는 단어에 이미 'Reich'가 들어 있기 때문에 동어 반복을 피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과도 구분하려고 Kaiserthum이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명목상으로는 선제후에 의해 선출되는 황제지만, 오스트리아 황제는 세습 황제였다.[* 다만 신성 로마 제국 황제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시기의 [[카를 7세]]를 제외하면 1453년 이래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거의 준세습했다.] 오스트리아 황제 즉위 당시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의 황제 칭호의 상대적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유럽의 다른 나라 왕들한테도 [[황제]]로 즉위하라고 권유했지만, 권유를 받은 왕들은 그게 별 실효성이 없는 유치한 대응법이라면서 무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 전인 18세기 말 영국 일각에서도 [[조지 3세]]에게 칭제를 권유했으나 조지 3세 본인이 거절한 바 있다.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